권득인 베드로
Peter
- 성인명: 권득인 베드로
- 성인명 (영어): Peter
- 축일: 09-20
- 성인구분/신분: 상인, 순교자
- 활동연도: 1805-1839
- 같은이름: 권 베드로, 권베드로, 베드로, 페드로, 페트루스, 피터
성 권득인 베드로(Petrus)는 서울 도성 안에서 태어난 신앙 깊은 가정의 후손이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고, 16세가 되던 해에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지만, 독실했던 어머니의 모범을 마음에 새기며 성실한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생계는 소규모 장사를 통해 어렵게 꾸려갔지만, 그의 인품과 신심은 주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결혼 후 그는 사직골에 정착해 살았는데, 새벽 첫 닭이 울기 전 일어나 등잔불을 밝히고 날이 샐 때까지 기도하는 생활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이후 너리골로 이사한 그는 십자가와 성패를 만들어 팔며 전교에 힘쓰는 동시에, 그것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았다. 그의 삶은 가난했지만, 신앙과 선행은 누구보다 풍성했다.
1839년 1월 16일 저녁, 집을 찾아온 처남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는 가족과 함께 체포되었다. 부인과 처남은 배교하여 풀려났지만, 권득인 베드로는 끝까지 신앙을 굽히지 않았다. 포장이 “왜 천주교를 믿느냐?”고 묻자 그는 담담히 이렇게 고백했다.
“천주는 천사와 사람, 모든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사람이 그분께 감사하지 않는 것이 어찌 옳다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누구나 천주를 공경하고 섬겨야 합니다.”
이 답변에 격분한 포장은 그에게 혹독한 매질을 명령하며 동료 신자들의 이름을 대라고 강요했다. 그러나 그는 “천주교에서는 남을 해치는 일을 엄금합니다. 제가 어찌 제 말로 다른 이들을 죽음에 내몰겠습니까?”라고 단호히 거절했다.
결국 포장은 그를 악명 높은 죄수들에게 넘겨 고문하게 했고, 그들은 그를 두 번이나 죽은 줄 알고 내버려둘 만큼 잔혹하게 때렸다. 그럼에도 그는 끝내 배교하지 않았고, 마침내 사형을 선고받았다.
1839년 5월 24일 금요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그는 35세의 나이로 순교의 길을 걸었다. 그의 굳센 믿음과 용기는 이후 한국 교회 안에서 깊은 존경을 받게 되었고,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념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