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헬

Rachel

라헬 (Rachel)

성녀 라헬은 구약성경에서 야곱의 사랑받는 아내이자 유다 민족의 어머니로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야곱의 외삼촌 라반의 작은딸로, 창세기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중 한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야곱은 형 에사우를 속이고 장자의 권리를 빼앗은 후, 라반의 집으로 피신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우물가에 양 떼에게 물을 먹이던 라헬과 처음 만났습니다. 성경은 그녀를 “몸매도 예쁘고 모습도 아름다웠다”(창세 29,17)고 전하며, 야곱은 그녀에게 첫눈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야곱은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 외삼촌에게 “라헬을 아내로 삼게 해 주신다면 칠 년 동안 일하겠습니다”(창세 29,18)라고 제안했고, 그 약속대로 성실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결혼 첫날밤, 야곱이 맞이한 신부는 라헬이 아닌 언니 레아였습니다. 라반은 “우리 지방에서는 작은딸을 맏딸보다 먼저 시집보내지 않는다”(창세 29,26)며 야곱을 속였고, 결국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 다시 칠 년을 더 일한 뒤 그녀를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야곱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했지만, 라헬은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레아가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열어 주셨지만, 라헬은 임신하지 못했다”(창세 29,31)고 성경은 전합니다. 야곱은 레아와 라헬의 몸종인 빌하(Bilhah)와 질파(Zilpah)를 통해 열 명의 아들을 낳았고, 마침내 라헬과의 사이에서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이 태어났습니다.

요셉의 탄생 이후 야곱은 라반에게 고향 가나안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요청했고, 많은 재산과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이때 라헬은 아버지 집안의 수호신들을 몰래 챙겨 나왔는데, 이는 훗날 야곱과 라반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여정을 이어가던 중, 라헬은 베텔을 떠나 에프라타(훗날 베들레헴)로 향하던 길에서 둘째 아이를 낳다가 산고로 인해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에 아이의 이름을 ‘벤 오니’(슬픔의 아들)라 불렀지만, 야곱은 ‘벤야민’(내 오른손의 아들)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라헬은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가에 묻혔으며, 그 무덤은 오늘날까지도 유다인들의 대표적인 순례지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자녀를 갖기 원하는 여성들이 자주 찾는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라헬을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자손들을 보며 통곡하는 어머니로 묘사했고(예레 31,15), 마태오 복음(2,18)에서는 헤로데가 유다의 임금 탄생 소식에 어린 남자아이들을 학살하자, 라헬이 자녀를 잃은 슬픔에 울부짖는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성녀 라헬의 축일이 공식적으로 지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지역에 따라 예수님의 조상들을 기념하는 12월 24일에 함께 기억하거나, 9월 30일, 1월 15일 등 다양한 날에 기념하기도 합니다. 『로마 순교록』의 초기 판이나 2001년 개정 후 2004년 수정된 판에서도 그녀에 대한 별도의 기록은 없지만, 많은 신자들이 모든 성인을 기리는 11월 1일에 성녀 라헬을 함께 기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