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Altairisfar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소개
멕시코만으로 흘러드는 모바일 강가의 오래된 항구 도시, 앨라배마주 모바일의 시내를 거닐다 보면 도핀 스트리트와 클레이본 스트리트가 만나는 곳에서 장중한 건물 하나가 발길을 붙잡습니다. 여덟 개의 굵은 도리아식 기둥이 받치는 현관과 그 양옆으로 솟은 두 개의 탑이 강이 흐르는 동쪽을 향해 서 있는데, 바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대성당(Cathedral-Basilica of the Immaculate Conception)입니다. 남부의 느긋한 햇살 아래, 이 성당은 이 지역 가톨릭 신앙의 긴 역사를 묵묵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성당은 모바일 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으로, 그 뿌리는 놀랍도록 깊습니다. 1703년 7월 20일 퀘벡의 생발리에 주교가 세운 본당에서 시작되었고, 1829년 비오 8세 교황이 모바일 교구를 설립하고 미카엘 포르티에를 초대 주교로 임명하면서 이 공동체는 교구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1962년에는 성 요한 23세 교황에 의해 준대성전으로 지정되었고, 지금도 정문 위에는 교황의 문장이 걸려 그 영예를 알려 줍니다.
포르티에 주교는 1833년 신학생 출신 건축가 클로드 베루종에게 로마 대성전 형식의 성당 설계를 맡겼습니다. 1835년 초석을 놓았으나 1837년 경제 공황으로 공사가 오랫동안 지연되었고, 마침내 1850년에 완공되어 포르티에 주교가 직접 축성했습니다. 벽돌로 지은 그리스 부흥 양식의 건물로 길이는 약 164피트, 폭은 약 90피트에 이릅니다. 처음에는 재정이 부족해 현관과 탑을 세우지 못했는데, 1870년대 퀸런 주교 때 현관이, 1884년 오설리번 주교 때 두 탑이 완성되었습니다. 여러 세대의 주교와 신자들이 인내로 이어 온 결실인 셈입니다. 최고 높이 약 60피트에 이르는 천장 아래 서면 고전적인 비례가 주는 단정함과 넉넉함이 함께 느껴지고, 약 103피트 높이의 두 탑은 지금도 모바일 시내의 오래된 거리 풍경 위로 우뚝 솟아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무엇보다 스테인드글라스가 눈길을 끕니다. 1890년부터 1910년 사이에 독일 뮌헨의 프란츠 마이어 공방에서 제작한 열두 개의 큰 창은 각각 폭 약 8피트, 높이 약 23피트에 이르며, 예수님과 함께한 성모 마리아의 삶을 한 장면씩 담고 있습니다. 제대 위로는 네 개의 대리석 기둥이 받치는 청동 발다키노가 자리하고, 그 위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상이 서 있습니다. 2000년대 복원 때에는 금박을 입힌 격자 천장과 대리석 통로, 역대 주교들의 문장이 새겨진 바닥이 더해졌고, 오르간 위에는 이사이의 나무를 그린 벽화가 그려졌습니다.
이 성당은 숱한 시련을 견뎌 온 곳이기도 합니다. 1865년 인근 탄약고 폭발로 북쪽 창문들이 부서졌고, 1946년에는 해군 비행기가 남쪽 탑에 부딪히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1954년 3월 19일 성 요셉 대축일에는 큰 화재가 일어나 내부가 심하게 손상되고 여덟 개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소실되었습니다. 소방관들이 불길 속에 들어가 성물을 지켜 냈고, 건물은 끝내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신자들은 창을 다시 만들고 내부를 새롭게 단장했으며, 1979년 허리케인 프레더릭으로 첨탑이 상했을 때도 다시 일어섰습니다.
미주 한인 신자의 시선으로 이 성당을 바라보면,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해 온 그 역사가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낯선 땅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신앙의 끈을 놓지 않고 공동체를 지켜 온 우리 이민 교회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 동안 이 성당이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봉헌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성모님을 각별히 사랑해 온 한국 교회의 신자들에게 따뜻한 위로로 다가옵니다.
미국 남부를 여행하신다면 모바일의 이 오래된 성당에 들러 보시기를 권합니다. 스테인드글라스에 담긴 성모님의 생애를 하나씩 따라가며 묵주기도 한 단을 바쳐 보셔도 좋겠습니다. 미사 시간과 방문 안내는 성당 공식 웹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성당을 나서기 전 잠시 뒤돌아 정문 위 교황의 문장과 두 탑을 올려다보며, 이 성당을 지켜 온 수많은 이들의 수고를 떠올려 보셔도 좋겠습니다. 세 세기를 넘게 이어져 온 신앙의 자리에서 고요하고 깊은 평화를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성당은 모바일 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으로, 그 뿌리는 놀랍도록 깊습니다. 1703년 7월 20일 퀘벡의 생발리에 주교가 세운 본당에서 시작되었고, 1829년 비오 8세 교황이 모바일 교구를 설립하고 미카엘 포르티에를 초대 주교로 임명하면서 이 공동체는 교구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1962년에는 성 요한 23세 교황에 의해 준대성전으로 지정되었고, 지금도 정문 위에는 교황의 문장이 걸려 그 영예를 알려 줍니다.
포르티에 주교는 1833년 신학생 출신 건축가 클로드 베루종에게 로마 대성전 형식의 성당 설계를 맡겼습니다. 1835년 초석을 놓았으나 1837년 경제 공황으로 공사가 오랫동안 지연되었고, 마침내 1850년에 완공되어 포르티에 주교가 직접 축성했습니다. 벽돌로 지은 그리스 부흥 양식의 건물로 길이는 약 164피트, 폭은 약 90피트에 이릅니다. 처음에는 재정이 부족해 현관과 탑을 세우지 못했는데, 1870년대 퀸런 주교 때 현관이, 1884년 오설리번 주교 때 두 탑이 완성되었습니다. 여러 세대의 주교와 신자들이 인내로 이어 온 결실인 셈입니다. 최고 높이 약 60피트에 이르는 천장 아래 서면 고전적인 비례가 주는 단정함과 넉넉함이 함께 느껴지고, 약 103피트 높이의 두 탑은 지금도 모바일 시내의 오래된 거리 풍경 위로 우뚝 솟아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무엇보다 스테인드글라스가 눈길을 끕니다. 1890년부터 1910년 사이에 독일 뮌헨의 프란츠 마이어 공방에서 제작한 열두 개의 큰 창은 각각 폭 약 8피트, 높이 약 23피트에 이르며, 예수님과 함께한 성모 마리아의 삶을 한 장면씩 담고 있습니다. 제대 위로는 네 개의 대리석 기둥이 받치는 청동 발다키노가 자리하고, 그 위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상이 서 있습니다. 2000년대 복원 때에는 금박을 입힌 격자 천장과 대리석 통로, 역대 주교들의 문장이 새겨진 바닥이 더해졌고, 오르간 위에는 이사이의 나무를 그린 벽화가 그려졌습니다.
이 성당은 숱한 시련을 견뎌 온 곳이기도 합니다. 1865년 인근 탄약고 폭발로 북쪽 창문들이 부서졌고, 1946년에는 해군 비행기가 남쪽 탑에 부딪히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1954년 3월 19일 성 요셉 대축일에는 큰 화재가 일어나 내부가 심하게 손상되고 여덟 개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소실되었습니다. 소방관들이 불길 속에 들어가 성물을 지켜 냈고, 건물은 끝내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신자들은 창을 다시 만들고 내부를 새롭게 단장했으며, 1979년 허리케인 프레더릭으로 첨탑이 상했을 때도 다시 일어섰습니다.
미주 한인 신자의 시선으로 이 성당을 바라보면,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해 온 그 역사가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낯선 땅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신앙의 끈을 놓지 않고 공동체를 지켜 온 우리 이민 교회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 동안 이 성당이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봉헌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성모님을 각별히 사랑해 온 한국 교회의 신자들에게 따뜻한 위로로 다가옵니다.
미국 남부를 여행하신다면 모바일의 이 오래된 성당에 들러 보시기를 권합니다. 스테인드글라스에 담긴 성모님의 생애를 하나씩 따라가며 묵주기도 한 단을 바쳐 보셔도 좋겠습니다. 미사 시간과 방문 안내는 성당 공식 웹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성당을 나서기 전 잠시 뒤돌아 정문 위 교황의 문장과 두 탑을 올려다보며, 이 성당을 지켜 온 수많은 이들의 수고를 떠올려 보셔도 좋겠습니다. 세 세기를 넘게 이어져 온 신앙의 자리에서 고요하고 깊은 평화를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진

주교좌 성당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대성당
Cathedral-Basilica of the Immaculate Concep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