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1+1=2인가요. 왜 4로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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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1+1=2인가요. 왜 4로 하면 안되고 7으로 하면 안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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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1004
(@jay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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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ined: 6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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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1+1=2인가요. 왜 4로 하면 안 되고 7으로 하면 안 되나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누구나 똑같이 공유하고 인정할때. 그게 정답일까요 아니면 진리일까요? 꼭 눈으로 보는 것만이 다일까요? 그러면 바람과 공기는 아니면 주파수와 WI‑FI는 어떤가요? 우린 매순간 보고 믿나요. 본적 없는 하느님은 어떻게 믿나요? 수많은 성인과 기적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만나고 기도 중에 만날 수 있지요. 어느 곳에 가도 있는 참종교는 무슨 종교인가요? 쉽게 접할 수 있는 종교는 무슨 종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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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들의 진리: 믿음이란 무엇인가. 1+1=2, 정말 당연한 걸까요? 갑자기 이상한 질문 하나 던져 볼게요.
왜 1+1=2인가요?
"당연하잖아!" 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정말 생각해봅시다. 왜 4가 아니고, 왜 7이 아닐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약속했기 때문이에요. 전 세계 사람들이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다"라고 합의했고, 그 약속 위에서 수학이라는 거대한 건물을 쌓아 올렸죠.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질문이 생깁니다.
"모두가 인정하면 그게 정답일까요? 아니면 진리일까요?"
정답과 진리는 다릅니다. 정답은 우리가 만든 약속이에요. 시험 문제의 답처럼, 특정 상황에서 맞는 것이죠. 1+1=2는 우리가 만든 수 체계 안에서의 '정답'입니다.
하지만 진리는 다릅니다. 진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인정하든 안 하든, 시대가 바뀌든 말든, 변하지 않는 것이죠.
예를 들어볼까요?
중세 시대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했어요. 모두가 그렇게 믿었죠. 하지만 진리는 달랐습니다. 지구는 처음부터 둥그러져 있었어요. 우리가 몰랐을 뿐이죠.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 8:32)
진리는 우리의 의견이나 다수결로 결정되는 게 아닙니다. 진리는 발견되는 것이에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재 "눈으로 보는 것만이 다일까요?"
당연히 아니죠!
바람을 본 적 있나요? 없죠. 하지만 나뭇잎이 흔들리고, 머리카락이 날리는 걸 보면서 우리는 "아, 바람이 분다"라고 알아요.
공기를 본 적 있나요? 없죠. 하지만 우리는 매 순간 공기를 마시며 살아갑니다. 공기 없이는 3분도 못 버티죠.
Wi-Fi를 본 적 있나요? 전파를 본 적 있나요? 없죠.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스마트폰으로 읽고 있다면, 당신은 보이지 않는 전자기파의 존재를 완전히 믿고 있는 겁니다.
재미있는 건, 우리는 이런 것들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Wi-Fi 신호가 보이지 않는다고 "Wi-Fi는 존재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사람 없잖아요? 왜 그럴까요?
그 결과와 영향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보이지 않는 하느님은 어떻게 믿나요? "본 적 없는 하느님은 어떻게 믿나요?"
좋은 질문이에요.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
성경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 토마스는 믿지 못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죠:
"나는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분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요한 20:25)
토마스는 직접 보고 만져야 믿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요한 20:29)
왜 그럴까요?
믿음은 보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경험하는 것으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간접적인 만남, 하지만 분명한 만남 하느님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하느님의 흔적을 볼 수 있어요.
1. 성인들의 삶을 통해서 성 프란치스코는 모든 것을 버리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았어요. 마더 데레사는 평생을 캘커타의 빈민가에서 보냈죠.
이런 삶이 인간의 힘만으로 가능할까요? 37년간 성당에서 생활하면서 저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하느님을 만나고 나서 완전히 변화된 모습을 봤어요.
이기적이던 사람이 헌신적으로 변하고, 분노로 가득했던 사람이 평화를 얻고, 절망에 빠진 사람이 희망을 되찾는 모습들. 이게 다 우연일까요?
바람을 직접 보지는 못하지만 나뭇잎의 흔들림으로 알 수 있듯이, 하느님의 역사하심은 변화된 삶으로 드러나요.
2. 기적을 통해서 루르드의 기적, 파티마의 기적, 수많은 치유의 사례들. 물론 의심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의학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고,                                                                교회는 수년간의 철저한 조사를 거쳐서만 기적으로 인정합니다.
3. 기도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적인 만남이에요.
기도할 때 느껴지는 그 평화, 성당에 들어갈 때 느껴지는 거룩함, 힘든 순간에 갑자기 떠오르는 위로의 말씀들.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히브리 11:1)
우리는 하느님을 눈으로 보지 못하지만, 우리 삶에서 경험하는 거예요.
세계 어디를 가도 만날 수 있는 종교 "어느 곳을 가도 있는 참종교는 무슨 종교인가요?"
이건 통계적 사실이에요.
**기독교(가톨릭+개신교+정교회)**는 전 세계 약 23억 명이 믿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믿는 종교입니다.
• 아프리카의 작은 마을에도
• 남미의 안데스 산맥에도
• 유럽의 대도시에도
• 아시아의 섬나라에도
• 오세아니아의 외딴 곳에도
십자가는 어디에나 있어요.
왜 그럴까요? 식민지 시대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돼요. 강요로 심어진 종교는 박해가 끝나면 사라지기 마련이거든요.
하지만 기독교는 박해 속에서 오히려 더 성장했어요. 로마 제국의 300년 박해, 일본의 숨은 크리스찬들, 중국의 지하교회, 북한의 순교자들...
왜 그럴까요?
쉽게 접할 수 있는 종교, 하지만 깊은 종교 "쉽게 접할 수 있는 종교는 무슨 종교인가요?"
기독교, 특히 가톨릭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요.
• 성경책은 전 세계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어 있어요 (3,000개 이상의 언어!)
• 미사는 매일 드려지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요
• 성당은 대부분 항상 열려 있어서, 언제든 들어가 기도할 수 있죠
• 세례를 받고 싶으면 교리 공부만 하면 돼요 (돈도 안 들고, 특별한 자격도 필요 없어요)
그런데 쉽게 시작할 수 있다고 해서 얕은 건 아니에요.
바다의 수심은 어린아이도 발을 담글 수 있을 만큼 얕은 곳이 있지만, 동시에 가장 깊은 곳도 있잖아요. 기독교도 마찬가지예요.
• 어린이도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걸 이해할 수 있고
• 동시에 평생을 신학 공부에 바쳐도 다 이해 못 할 만큼 깊어요.
다시 Wi-Fi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우리는 Wi-Fi를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연결되면 알 수 있죠. 갑자기 동영상이 재생되고, 메시지가 전송되고, 정보가 흘러들어와요.
하느님도 마찬가지예요. "연결"되면 알 수 있어요.
기도는 하느님과의 Wi-Fi 연결이에요. 미사는 최상의 신호를 받는 거고, 성사는 직통 회선이죠.
처음에는 신호가 약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정말 연결된 건가?" 의심스러울 수도 있고요.
하지만 계속 연결을 시도하다 보면, 어느 순간 확실히 느껴져요.
"아,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 "누군가 내 기도를 듣고 계시구나." "이 평화는 내 힘으로 만든 게 아니구나."
37년의 경험이 말해 주는 것은 제가 37년간 가톨릭 신앙 안에서 생활하면서 본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 불치병에서 회복된 사람들
• 파탄 직전의 가정이 회복된 경우들
• 자살 직전의 청년이 희망을 되찾은 순간들
• 원수 같던 사람들이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모습들
이 모든 게 우연일까요? 착각일까요? 플라시보 효과일까요?
아니요. 저는 확신해요. 이건 하느님의 손길이에요.
바람을 보지 못해도 그 영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하느님을 눈으로 보지 못해도 그분의 역사하심은 명확하게 드러나요.
당신도 연결될 수 있어요. 친구들, 혹시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나요?
"하느님이 정말 계실까?" "왜 나는 느껴지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은 다 믿는데, 나만 이상한 건가?"
괜찮아요. 의심하는 것도, 질문하는 것도 나쁜 게 아니에요.
토마스도 의심했고, 베드로도 흔들렸고, 바오로도 처음에는 박해자였어요.
중요한 건 **"연결을 시도해 보는 것"**이에요.
Wi-Fi에 연결하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연결 버튼을 눌러야 하잖아요? 하느님께도 마찬가지예요.
기도해보세요. 처음에는 어색하고 이상할 거예요. "이게 무슨 소용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계속해 보세요.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마태 7:7)
보이지 않지만, 가장 확실한 것 1+1=2는 우리가 만든 정답이에요.
하지만 하느님의 사랑은 진리예요. 우리가 인정하든 안 하든, 보든 안 보든, 느끼든 안 느끼든, 하느님은 지금 이 순간도 당신을 사랑하고 계세요.
바람처럼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Wi-Fi처럼 눈에 안 띄지만 연결되면 확실히 알 수 있고, 공기처럼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리 삶을 지탱하는 분.
그분이 바로 하느님이세요.
그리고 기독교는 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보이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유일한 종교예요.
예수님이라는 이름으로. 십자가라는 표시로. 성령이라는 현존으로.
그래서 어디를 가도 만날 수 있고, 그래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고, 그래서 2,0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는 거예요.
초대합니다. 오늘, 한 번 시도해 보지 않을래요?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 연결해 보는 거예요.
"하느님, 제가 당신을 볼 수는 없지만, 만약 정말 계시다면, 저에게 보여주세요. 당신의 사랑을, 당신의 존재를."
이렇게 간단한 기도 하나로 시작할 수 있어요.
그리고 기다려 보세요.
Wi-Fi 신호가 잡히듯, 바람이 느껴지듯, 공기가 폐를 채우듯,
하느님은 당신의 마음을 채우실 거예요.
"이제는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게 될 것입니다." (1코린토 13:12)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괜찮아요. 언젠가 우리는 분명히 보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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