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기억하는 성인들의 축일과 생애, 영성을 소개합니다. 103위 한국 순교 성인을 먼저 보여 드립니다.
오늘 10월 27일
소년 시절 항해 중 붙잡혀 악숨 왕국의 궁정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그리스도교를 퍼뜨렸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성 아타나시오에게서 주교 서품을 받아 에티오피아 교회의 첫 주교가 되었습니다.
오늘 순교하신 한국 성인
이날 순교하신 103위 한국 성인은 없습니다.
1984년 5월 6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서울에서 한국 순교자 103위를 성인으로 선포했습니다. 교회는 매년 9월 20일에 이분들을 함께 기념합니다.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 광화문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를 복자로 선포했습니다. 한국 교회는 매년 5월 29일에 이분들을 기념합니다.
젊은 나이에 그르노블의 주교가 되어 성직 매매와 부패로 무너진 교구를 개혁했습니다. 성 브루노와 동료들에게 샤르트뢰즈 산지를 내어 주어 카르투시오회 수도원이 시작되도록 도왔습니다.
요한 복음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의 십자가 곁을 지킨 여인입니다. 주님을 끝까지 따르며 부활의 소식을 처음 전해 들은 여인들 가운데 한 분으로 기억됩니다.
4세기 신학자이자 콘스탄티노플의 주교로, 삼위일체 교리를 밝힌 설교로 ‘신학자’라 불립니다. 대 바실리오의 평생 벗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이 무너지던 시기에 도나우강 유역의 노리쿰 지방에서 수도자로 살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민족의 침입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을 보살피고 포로를 구하며 수도원을 세웠습니다.
프랑크 귀족 출신으로 주교직을 사양하고 리모주 근처 숲에서 은수 생활을 하다가 수도원을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갇힌 이들을 위해 전구하는 성인으로 중세 유럽 곳곳에서 공경받았습니다.
놀라의 성 바울리노는 큰 재산과 높은 관직을 버리고 수도자적 삶을 택한 놀라의 주교이자, 신앙을 노래한 그리스도교 시인입니다.
이탈리아 놀라의 사제로 박해 시기에 붙잡혀 고문을 당했으나 풀려난 뒤에도 신앙을 굳게 지켰습니다. 주교직을 사양하고 가난하게 살며 이웃을 도왔고, 그의 무덤은 오랫동안 순례지가 되었습니다.
이시도로는 마드리드 근교에서 평생 남의 땅을 일군 소박한 농부였습니다. 매일 미사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며 가난한 이들과 음식을 나누었고 농민들의 수호성인이 되었습니다.
대 바실리오의 동생으로 카파도키아의 니사 주교가 되어 아리우스파에 맞서 삼위일체 신앙을 지켰습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 참여했으며 깊이 있는 신비신학 저술로 동방 교회의 위대한 교부로 존경받습니다.
로마 황제의 관리였던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고문 속에서도 굳건한 모습을 보고 감동하여 스스로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아내 나탈리아의 격려를 받으며 박해 속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니코메디아의 젊은 그리스도인으로 이교도와의 혼인을 거절하여 아버지에게 고발당했습니다. 갖은 고문에도 신앙을 지키다 디오클레티아누스 박해 때 참수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다마스쿠스에서 칼리프 궁정의 관리로 일하다가 예루살렘 근처 마르 사바 수도원의 수도자가 되었습니다. 성화 공경을 변호하는 글과 정통 신앙을 정리한 저술로 교회 학자로 선포되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다마스쿠스의 제자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눈이 먼 사울에게 갔습니다. 두려움을 이기고 사울에게 안수하여 시력을 되찾게 하고 세례를 베풀어 이방인의 사도가 탄생하도록 도왔습니다.
아일랜드 왕족 출신으로 글렌달로그 수도원장을 거쳐 더블린의 대주교가 되었습니다. 혼란한 시기에 평화를 중재하고 가난한 이들을 보살폈으며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여행 중에 선종했습니다.
프란치스코 드 라발은 프랑스 출신으로 퀘벡의 첫 주교가 되었습니다. 신학교를 세우고 원주민 선교와 교회 기틀을 다지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이냐시오는 사르데냐 출신의 카푸친회 평수사로 40년 동안 탁발 소임을 맡았습니다. 겸손하고 온화한 모습으로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위로하여 많은 이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베네딕도회 수도자이자 교사로 헝가리 선교에 나섰다가 레겐스부르크의 주교로 임명되었습니다. 성직자 교육과 수도원 쇄신에 힘썼으며 훗날 황제가 된 성 헨리코의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빈첸시오는 남프랑스 레랭 섬의 수도자이자 신학자였습니다. 그는 참된 신앙이란 언제 어디서나 모든 이가 믿어 온 것이라는 원칙을 제시하여 교리 전승의 기준을 밝혔습니다.
64년 로마 대화재 이후 네로 황제는 그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려 잔혹하게 박해하였습니다. 이때 이름 없이 목숨을 바친 많은 신자들을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 대축일 다음 날 기억합니다.
로마의 귀족 부인으로 남편을 잃은 뒤 부와 지위를 버리고 동정녀 공동체에 들어갔습니다. 겸손하게 봉사하며 기도와 보속의 삶을 살았고 성 예로니모가 편지에서 그녀를 칭송했습니다.
칠레 산티아고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예수님과의 깊은 사랑을 일기와 편지에 남겼습니다.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한 지 1년이 되지 않아 열아홉 살에 세상을 떠났으며 칠레 최초의 성인입니다.
16세기 스페인 바스크 출신으로, 부상 중 회심하여 예수회를 세웠습니다. 『영신 수련』을 남겼습니다.
루르드의 가난한 방앗간 집 딸로 1858년 마사비엘 동굴에서 성모님의 발현을 여러 차례 보았습니다. 이후 느베르의 애덕 수녀회에 들어가 병고 속에서도 겸손하게 숨은 삶을 살았습니다.
토스카나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열두 살부터 루카의 한 집안에서 평생 하녀로 일했습니다. 처음엔 오해와 냉대를 받았으나 성실한 노동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자선으로 존경을 얻어 가사 노동자의 수호성인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