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를 고르면 그날 축일인 성인과 그날 순교하신 한국 성인을 보여 드립니다.
오늘 10월 26일
한국 성인 축일·순교일 · 오늘 날짜는 보고 계신 기기의 시간대를 따릅니다.
니코메디아의 젊은 그리스도인으로 이교도와의 혼인을 거절하여 아버지에게 고발당했습니다. 갖은 고문에도 신앙을 지키다 디오클레티아누스 박해 때 참수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아르메니아 멜리테네의 로마 군인으로 친구의 권유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 박해 칙령이 내려지자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이교 제사를 거부하여 참수되었습니다.
성 치릴로의 형으로, 슬라브 민족 선교를 이어 간 주교입니다. 유럽의 공동 수호성인입니다.
1597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십자가형으로 순교한 예수회 수사 바오로 미키와 동료 25명입니다.
라벤나에서 가난하게 자라 학자가 되었으나 은수 수도원에 들어가 엄격한 수도 생활을 했습니다. 추기경 주교로서 성직 매매와 성직자의 부패를 바로잡는 교회 개혁에 힘써 교회학자로 선포되었습니다.
4세기 아르메니아 세바스테의 주교이자 순교자입니다. 그의 축일에는 목의 병을 위한 축복을 받습니다.
13세기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 일곱 명이 세속을 떠나 함께 기도와 보속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성모 마리아를 특별히 공경하는 성모의 종 수도회를 세웠으며 함께 시성되었습니다.
이탈리아 남부 출신의 작은형제회 평수사로 나폴리 수도원에서 문지기와 탁발 소임을 맡았습니다. 겸손하고 쾌활하게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돌보아 나폴리 사람들의 위로자로 불렸습니다.
리스본 귀족 출신의 예수회원으로 인도 남부에 선교사로 가서 현지 수행자의 생활 방식을 따르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많은 이들을 개종시켰으나 박해로 투옥되었고 결국 참수되어 순교했습니다.
9세기 테살로니카 출신 형제 선교사로, 슬라브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유럽의 공동 수호성인입니다.
프랑스 예수회 사제로 파레르모니알에서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예수 성심 신심을 널리 알렸으며 잉글랜드에서 옥고를 치른 뒤 쇠약해져 세상을 떠났습니다.
2세기 스미르나의 주교로, 사도 요한의 제자였다고 전해집니다. 86세에 화형으로 순교했습니다.
포르투갈 파티마의 목동으로 1917년 성모님의 발현을 보았습니다. 숨어 계신 예수님을 위로하고 싶어 감실 앞에서 오래 기도했으며 스페인 독감으로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으로 가난한 소녀들이 교육받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학교를 열었습니다. 성 요셉 칼라산시오의 정신을 따르는 피아리스트 수녀회를 세워 여성 교육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잉글랜드 출신의 수녀로 성 보니파시오의 요청을 받아 독일 선교를 돕기 위해 건너갔습니다. 하이덴하임 수도원을 이끌었으며 그녀의 유해가 모셔진 아이히슈테트는 큰 순례지가 되었습니다.
6세기 성 베네딕토의 쌍둥이 누이로, 여자 수도원을 이끈 동정녀입니다.
3세기 시칠리아의 동정녀로, 박해 속에서 신앙과 순결을 지키다 순교했습니다.
보르도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남편을 잃은 뒤 자녀들을 키우고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했습니다. 여성 교육을 위한 마리아의 성모 수녀회를 세워 소녀들에게 신앙과 학문을 가르쳤습니다.
수단 출신으로 어린 시절 노예로 팔렸다가 자유를 얻어 이탈리아에서 수녀가 되었습니다. 인신매매 피해자의 수호성인입니다.
파티마의 세 목동 가운데 막내로 오빠 프란치스코와 함께 성모님의 발현을 보았습니다.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꺼이 희생을 바쳤고 병고를 견디다 아홉 살에 세상을 떠나 순교자가 아닌 최연소 성인이 되었습니다.
프랑크 왕실에서 일하다 수도자가 되어 아니안에 수도원을 세웠습니다. 성 베네딕토 규칙을 바탕으로 카롤링거 왕국 전역의 수도원 생활을 개혁하여 서방 수도원 제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안티오키아의 주교로 아리우스파와의 논쟁 속에서 여러 차례 추방을 겪었습니다. 니케아 신앙을 지키며 교회의 일치를 위해 애썼고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주재하던 중 세상을 떠났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연로한 동정녀로 폭동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공격당할 때 붙잡혔습니다. 이를 모두 뽑히는 고문을 당하고도 신앙을 저버리지 않았으며 스스로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가 순교했습니다.
글로바의 아들로 전해지며 주님의 친척으로서 야고보의 뒤를 이어 예루살렘 교회를 이끌었습니다. 매우 고령에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에 고문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습니다.
덴마크계 가문 출신으로 프랑스 플뢰리 수도원에서 수도 생활을 배운 뒤 잉글랜드로 돌아왔습니다. 우스터 주교와 요크 대주교를 지내며 수도원을 세우고 개혁했으며 가난한 이들의 발을 씻겨 주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잉글랜드 켄트의 왕으로 그리스도인 왕비 베르타의 영향 속에 캔터베리의 성 아우구스티노 일행을 맞아들였습니다. 세례를 받은 뒤 백성에게 신앙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교회를 보호하고 캔터베리에 교회를 세우도록 도왔습니다.
토스카나 출신으로 오랫동안 혼인하지 않은 채 한 귀족과 살며 아들을 두었으나 그가 살해된 뒤 깊이 회개했습니다. 프란치스코회 제3회원이 되어 보속과 기도 속에 살며 코르토나에 병원을 세워 가난한 이들을 돌보았습니다.
갈리아의 쥐라 산지로 들어가 은수 생활을 시작한 수도자입니다. 동생 성 루피치노와 함께 콩다 수도원을 세워 많은 제자를 길렀고 쥐라 지역 수도 생활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성 파트리치오 시대 이후 복음이 뿌리내리던 시기에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했습니다. 킬데어에 수도원을 세워 이끌었으며 가난한 이들에 대한 너그러움으로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습니다.
아시시 출신의 쾌활한 청년으로 세속 생활을 즐기다 성모님의 부르심을 느끼고 수난회에 입회했습니다. 통고의 성모께 대한 깊은 신심으로 작은 일에 충실하다 사제가 되기 전 결핵으로 스물넷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피아첸차의 귀족으로 사냥 중 낸 불로 큰 피해가 나자 다른 사람이 누명을 쓴 것을 보고 스스로 잘못을 고백했습니다. 재산을 모두 배상한 뒤 프란치스코회 제3회원이 되어 시칠리아에서 은수자로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