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를 고르면 그날 축일인 성인과 그날 순교하신 한국 성인을 보여 드립니다.
오늘 10월 27일
한국 성인 축일·순교일 · 오늘 날짜는 보고 계신 기기의 시간대를 따릅니다.
놀라의 성 바울리노는 큰 재산과 높은 관직을 버리고 수도자적 삶을 택한 놀라의 주교이자, 신앙을 노래한 그리스도교 시인입니다.
64년 로마 대화재 이후 네로 황제는 그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려 잔혹하게 박해하였습니다. 이때 이름 없이 목숨을 바친 많은 신자들을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 대축일 다음 날 기억합니다.
19세기 우간다에서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21명입니다. 아프리카 청년의 수호성인입니다.
그레고리오 바르바리고는 베르가모와 파도바의 주교로 트리엔트 공의회의 정신을 충실히 실천하였습니다. 신학교를 크게 발전시키고 학문과 교리 교육을 장려한 개혁적인 목자였습니다.
노르베르토는 세속적인 삶을 살다가 회심하여 프레몽트레회를 창설하였습니다. 훗날 마그데부르크의 대주교가 되어 성체 공경과 성직자 쇄신에 힘썼습니다.
10~11세기 이탈리아의 수도원장으로, 은수 생활과 공동생활을 결합한 카말돌리회를 세웠습니다.
성 마르셀랭 샹파냐는 프랑스의 사제로, 마리스타 수사회를 세워 가난한 시골 아이들에게 교육과 신앙을 전한 성인입니다.
마르첼리노 사제와 구마 직무를 맡았던 베드로는 디오클레티아누스 박해 때 로마에서 순교하였습니다. 감옥에서도 다른 이들에게 신앙을 전했다고 하며 로마 전례 감사기도에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메다르도는 프랑스 북부 누아용의 주교로 이교 지역에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아끼는 너그러운 목자였으며 농민들 사이에서 날씨와 수확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았습니다.
키프로스 출신으로 초대 교회에서 바오로와 함께 선교 여행을 한 사도입니다.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다 다마스쿠스 길에서 회심한 이방인의 사도입니다. 서간들을 남기고 로마에서 순교했습니다.
갈릴래아의 어부로, 예수님께서 교회의 반석으로 세우신 첫째 사도입니다. 로마에서 순교했습니다.
8세기 영국 출신 수도자이자 주교로, 독일에 복음을 전해 ‘독일의 사도’라 불리며 순교했습니다.
비토는 시칠리아 출신의 소년으로 어려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박해 때 신앙을 지키다 순교하였고 중세 유럽에서 널리 공경받은 성인입니다.
실베리오는 6세기의 교황으로 황실의 정치적 요구에 굴복하지 않아 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외딴 섬으로 유배되어 고난 속에 세상을 떠났기에 순교자로 공경받습니다.
안토니오 마리아 잔넬리는 이탈리아 키아바리에서 활동한 사제로 병자와 고아를 돌보는 수녀회를 세웠습니다. 보비오의 주교가 되어 성직자 교육과 교구 쇄신에 헌신하였습니다.
16세기 이탈리아 귀족 출신 예수회 수사로, 흑사병 환자를 돌보다 23세에 선종했습니다. 청소년의 수호성인입니다.
에프렘은 시리아 니시비스와 에데사에서 활동한 부제로 수많은 찬미가를 지었습니다. 노래로 신앙을 가르쳐 '성령의 하프'라 불렸으며 1920년 교회 학자로 선포되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제자로 그의 겉옷과 함께 예언자의 사명을 이어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북왕국에서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여러 표징을 행하며 백성을 하느님께 이끌었습니다.
오누프리오는 이집트 사막에서 오랜 세월 홀로 기도하며 살았던 은수자입니다. 세상을 떠나 하느님께만 의지한 그의 삶은 동서방 교회에서 고행과 기도의 모범으로 전해졌습니다.
요셉 카파소는 토리노에서 젊은 사제들을 가르치며 영적 지도자로 활동하였습니다. 사형수와 수감자들을 돌보는 데 헌신했고 요한 보스코의 스승이자 후원자였습니다.
예수님의 길을 준비한 마지막 예언자로, 요르단 강에서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교회는 6월 24일 그의 탄생을 경축합니다.
16세기 잉글랜드 로체스터의 주교로, 토마스 모어와 같은 이유로 1535년 순교했습니다.
2세기 철학자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이성으로 변론하다 로마에서 순교했습니다. 철학자의 수호성인입니다.
성 이냐시오 말로얀은 아르메니아 가톨릭교회의 마르딘 대주교로, 1915년 아르메니아인 박해 때 신앙을 버리기를 거부하고 순교하였습니다.
2세기 리옹의 주교이자 교회 학자로, 영지주의 이단을 반박한 『이단 반박』을 썼습니다.
16세기 잉글랜드의 대법관이자 학자로, 양심을 지켜 헨리 8세의 수장령을 거부하다 순교했습니다. 정치인의 수호성인입니다.
프란치스코 카라촐로는 중병에서 회복된 뒤 사제가 되어 소성직수도회를 공동 창설하였습니다. 회원들이 돌아가며 끊임없이 성체 조배를 하도록 하여 성체 신심을 널리 일깨웠습니다.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는 스페인 출신 사제로 1928년 오푸스 데이를 창설하였습니다. 일상의 일과 가정생활을 통해 누구나 성덕에 이를 수 있다는 가르침을 널리 전했습니다.
루트가르다는 벨기에의 시토회 수녀로 깊은 관상 기도와 예수 성심에 대한 사랑으로 알려졌습니다. 말년에는 시력을 잃었으나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와 보속을 계속하였습니다.
성녀 마리암 트레시아는 인도 케랄라의 수녀로, 성가정 수녀회를 세워 가난하고 아픈 이들과 어려움에 처한 가정들을 돌본 성녀입니다.
프로스페로는 남프랑스 출신의 평신도로 아우구스티노의 은총 교리를 열렬히 옹호하였습니다. 로마에서 교황 레오 1세를 도우며 신학 저술과 연대기를 남겼습니다.
치릴로는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로 그리스도의 한 위격을 부정하는 네스토리우스에 맞섰습니다. 에페소 공의회에서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이심을 밝히는 데 중심 역할을 하였습니다.
13세기 포르투갈 출신 프란치스코회 사제이자 교회 학자로, 뛰어난 설교가입니다. 잃은 물건을 찾는 이들이 많이 청하는 성인입니다.
란데리코는 7세기 파리의 주교로 기근 때 교회 재산을 팔아 굶주린 이들을 먹였습니다. 병자들을 위한 구호소를 세운 것으로 전해지며 자선의 목자로 기억됩니다.
라니에리는 피사의 상인 집안 출신으로 젊은 시절 회심하여 성지에서 고행의 삶을 살았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와 기도와 설교로 많은 이를 하느님께 이끌어 피사의 수호성인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