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를 고르면 그날 축일인 성인과 그날 순교하신 한국 성인을 보여 드립니다.
오늘 10월 26일
한국 성인 축일·순교일 · 오늘 날짜는 보고 계신 기기의 시간대를 따릅니다.
로마의 귀족 부인으로 남편을 잃은 뒤 부와 지위를 버리고 동정녀 공동체에 들어갔습니다. 겸손하게 봉사하며 기도와 보속의 삶을 살았고 성 예로니모가 편지에서 그녀를 칭송했습니다.
잉글랜드 북부의 목동이었다가 수도자가 되어 노섬브리아 마을들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판섬에서 은수자로 살다 린디스판의 주교가 되었으며 북부 잉글랜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성인 가운데 한 분입니다.
프리슬란트 출신으로 잉글랜드 요크에서 공부한 뒤 고향과 작센 지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뮌스터의 첫 주교가 되었으며 베르덴에 수도원을 세웠습니다.
보헤미아 왕의 딸로 황제와의 혼인을 거절하고 성녀 클라라와 서신을 나누며 프라하에 클라라회 수녀원을 세웠습니다. 병원과 형제회도 세워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돌보는 데 일생을 바쳤습니다.
폴란드 왕의 아들로 궁정의 사치 속에서도 기도와 금욕,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살았습니다. 성모님께 깊은 신심을 지녔으며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 리투아니아의 수호성인이 되었습니다.
프랑크족 부르군트 왕국의 왕으로 젊은 시절의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하는 삶으로 돌아섰습니다. 교회와 수도원을 세우고 전염병과 기근 때 백성을 돌보아 성인으로 공경받습니다.
이탈리아 북부 출신의 사제로 성 요한 보스코의 영향을 받아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한 일에 뛰어들었습니다. 하느님 섭리의 작은 일 수도회를 세워 고아와 장애인, 노인을 돌보는 시설을 여러 나라에 열었습니다.
페르시아의 부제로 박해로 투옥되었다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풀려났습니다. 그러나 말씀 선포를 멈출 수 없다며 계속 전교하다 다시 붙잡혀 잔혹한 고문 끝에 순교했습니다.
엘살바도르 산살바도르의 대주교로 내전과 폭력 속에서 가난한 이들과 억압받는 이들의 목소리가 되었습니다. 폭력 중단을 호소하다 미사 집전 중 제대에서 총격을 받아 순교했습니다.
페르시아 샤푸르 2세의 박해 때 신앙을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을 찾아가 격려한 두 수도자 형제입니다. 자신들도 체포되어 신앙을 버리라는 요구를 거절하고 혹독한 고문 끝에 순교했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배필이자 예수님의 양부로, 말없이 순종하며 성가정을 지켰습니다. 교회와 가정, 노동자의 수호성인입니다.
칼뱅파 가정에서 자란 스코틀랜드인으로 유럽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예수회 사제가 되었습니다. 가톨릭이 금지된 고국에 몰래 돌아가 사목하다 체포되었고 교황의 권위를 부정하지 않아 글래스고에서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시나이산에서 오랜 세월 은수 생활을 하다 그곳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습니다. 덕을 향해 한 계단씩 올라가는 영적 여정을 그린 천국의 사다리를 저술하여 동서방 교회에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스페인의 법학자로 평신도였으나 리마 대주교로 임명되어 페루로 건너갔습니다. 광활한 교구를 걸어서 순방하며 원주민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권리를 옹호했으며 아메리카 최초의 신학교를 세웠습니다.
5세기 아일랜드에 복음을 전한 주교로,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입니다.
필라델피아의 부유한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나 막대한 유산을 하느님 사업에 바쳤습니다. 성체 수녀회를 세워 원주민과 흑인 공동체를 위한 학교와 선교소를 열었으며 자비에르 대학교를 세웠습니다.
남편을 여읜 뒤 성 빈첸시오 드 폴의 지도를 받아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일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함께 사랑의 딸회를 세워 봉쇄 없이 병자와 고아, 가난한 이들 곁에서 일하는 새로운 수도 생활을 열었습니다.
독일 왕 하인리히 1세의 왕비로 다섯 자녀를 둔 어머니였습니다. 남편을 여읜 뒤 아들들의 다툼으로 고통을 겪었으나 기도와 자선을 멈추지 않았고 여러 수도원과 교회를 세웠습니다.
203년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 순교한 젊은 어머니입니다. 감옥에서 쓴 기록이 전해집니다.
성녀 페르페투아와 함께 순교한 여종으로, 감옥에서 아기를 낳은 뒤 순교했습니다.
15세기 로마의 귀족 부인으로, 가정을 돌보며 가난한 이들을 섬기고 봉헌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성 이시도로의 형으로 수도자가 되었다가 세비야의 대주교가 되었습니다. 아리우스파였던 서고트족 왕실과 백성이 가톨릭 신앙으로 돌아오도록 이끌었고 톨레도 공의회를 주재했습니다.
이스키아섬 출신으로 십대에 작은형제회에 입회하여 엄격한 개혁 공동체에서 살았습니다. 사제와 장상으로서 겸손과 가난을 실천했으며 나폴리에서 많은 이들의 영적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4세기 예루살렘의 주교이자 교회 학자로, 세례 예비자를 위한 교리 강의로 유명합니다.
6세기 웨일스의 수도자이자 주교로 여러 수도원을 세우고 엄격한 노동과 기도의 삶을 가르쳤습니다. 메네비아의 주교로서 신앙을 굳건히 하여 웨일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습니다.
보름스의 주교였다가 바이에른 지방으로 가서 복음을 전한 선교사입니다. 로마 시대의 폐허 위에 잘츠부르크를 세우고 성 베드로 수도원을 열어 오스트리아 교회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죄수로 전통적으로 디스마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주님께 기억해 달라고 청하여 오늘 낙원에 있으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16세기 포르투갈 출신으로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병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를 세웠고 병원과 간호사의 수호성인입니다.
이슬람 통치 아래 있던 코르도바의 학식 높은 사제로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했습니다.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했으며 개종한 젊은 여인을 보호하다 체포되어 참수되었습니다.
프랑스 코르비 출신으로 은수자로 살다가 성녀 클라라의 본래 정신으로 돌아가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프랑스와 플랑드르 곳곳에 수녀원을 세우고 개혁하여 클라라회를 쇄신했습니다.
황제 오토 3세의 신임받는 고문이었다가 쾰른의 대주교가 되었습니다. 기근 때 가난한 이들을 아낌없이 도왔으며 도이츠에 수도원을 세우고 기도로 비를 내리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스위스의 농부이자 열 자녀의 아버지로 공직에서도 존경받았으나 아내의 동의를 얻어 은수자가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성체만으로 살았다고 전해지며 내전 위기에서 조언으로 스위스의 평화를 지켜 수호성인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