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를 고르면 그날 축일인 성인과 그날 순교하신 한국 성인을 보여 드립니다.
오늘 10월 26일
한국 성인 축일·순교일 · 오늘 날짜는 보고 계신 기기의 시간대를 따릅니다.
젊은 나이에 그르노블의 주교가 되어 성직 매매와 부패로 무너진 교구를 개혁했습니다. 성 브루노와 동료들에게 샤르트뢰즈 산지를 내어 주어 카르투시오회 수도원이 시작되도록 도왔습니다.
요한 복음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의 십자가 곁을 지킨 여인입니다. 주님을 끝까지 따르며 부활의 소식을 처음 전해 들은 여인들 가운데 한 분으로 기억됩니다.
칠레 산티아고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예수님과의 깊은 사랑을 일기와 편지에 남겼습니다.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한 지 1년이 되지 않아 스무 살에 세상을 떠났으며 칠레 최초의 성인입니다.
루르드의 가난한 방앗간 집 딸로 1858년 마사비엘 동굴에서 성모님의 발현을 여러 차례 보았습니다. 이후 느베르의 애덕 수녀회에 들어가 병고 속에서도 겸손하게 숨은 삶을 살았습니다.
토스카나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열두 살부터 루카의 한 집안에서 평생 하녀로 일했습니다. 처음엔 오해와 냉대를 받았으나 성실한 노동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자선으로 존경을 얻어 가사 노동자의 수호성인이 되었습니다.
토스카나에서 태어나 아홉 살에 수녀원에 들어갔고 아주 젊은 나이에 원장이 되었습니다. 고향 몬테풀치아노에 도미니코회 수녀원을 세워 이끌었으며 기도와 보속으로 많은 이들을 감화시켰습니다.
카타리파 이단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이고 성 도미니코에게서 수도복을 받았습니다. 이탈리아 북부에서 열정적으로 설교하다 길에서 습격당해 순교했으며 이듬해 시성되었습니다.
3세기 말 디오클레티아누스 대박해가 시작되기 직전에 로마 교회를 이끈 교황입니다. 달마티아 출신으로 전해지며 카타콤바에 묻혀 그 묘비가 오늘날까지 전해집니다.
알자스의 귀족 출신으로 툴의 주교를 지낸 뒤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여러 나라를 몸소 다니며 교회회의를 열어 성직 매매와 성직자 부패를 단죄하는 그레고리오 개혁의 길을 열었습니다.
프랑스 브르타뉴 출신의 사제로 서부 프랑스의 시골 마을들을 다니며 민중 선교를 했습니다. 성모님을 통해 예수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는 신심을 가르쳤으며 몽포르 선교회와 지혜의 딸 수녀회를 세웠습니다.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로, 베드로와 바오로를 도운 복음 사가입니다. 그의 상징은 사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참 인간의 의지도 지니셨다는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라테라노 교회회의를 열었습니다. 이 때문에 황제의 명으로 체포되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끌려갔고 크림반도로 유배되어 고난 속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프랑스 출신의 마리아회 사제로 남태평양 푸투나섬에 선교사로 가서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추장의 아들이 세례를 청하자 이에 분노한 이들에게 살해되어 오세아니아의 첫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16세기 도미니코회 출신 교황으로,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정을 실행하고 미사 경본과 교리서를 펴냈습니다.
14~15세기 스페인 도미니코회 사제로, 유럽 곳곳을 다니며 회개를 설교했습니다.
11세기 폴란드 크라쿠프의 주교로, 왕의 불의를 꾸짖다가 순교했습니다.
성 베드로와 성 리노에 이어 로마 교회를 이끈 초기 교황으로 클레토라고도 불립니다. 박해 시기에 로마 교회를 돌보았으며 전통적으로 순교자로 공경받아 왔습니다.
콤모두스 황제 시대 로마의 학식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신앙 때문에 고발당했습니다. 원로원 앞에서 그리스도교를 훌륭하게 변론했으나 신앙을 버리지 않아 사형 선고를 받고 순교했습니다.
11~12세기 캔터베리의 대주교이자 교회 학자로,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을 말한 스콜라 신학의 아버지입니다.
바빌론 유배 중의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활동한 사제이자 예언자입니다. 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나는 환시 등을 통해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시리라는 희망을 전했습니다.
17세기 프랑스 사제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학교와 그리스도교 학교 형제회를 세웠습니다. 교사의 수호성인입니다.
4세기 초 순교한 군인으로, 용을 무찌른 이야기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영국과 여러 나라의 수호성인입니다.
프랑스 카바이용 출신으로 세속적인 젊은 시절을 보낸 뒤 회개하여 사제가 되었습니다. 평신도들에게 쉽고 체계적으로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그리스도교 교리 신부회를 세웠습니다.
15세기 이탈리아의 은수자로, 겸손과 극기를 실천한 최소형제회를 세웠습니다.
프랑스 피카르디 출신으로 오랜 세월 몸이 마비된 채 지내면서도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혼란 속에서 나무르의 노트르담 수녀회를 세워 가난한 소녀들의 교육에 헌신했습니다.
오늘날 뉴욕주 지역의 모호크족 출신으로 천연두로 얼굴에 상처를 입고 시력도 약해졌습니다. 세례를 받은 뒤 박해를 피해 캐나다의 그리스도인 마을로 가서 기도와 동정의 삶을 살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7세기 스페인 세비야의 주교이자 교회 학자로, 당대의 지식을 집대성한 『어원 사전』을 썼습니다.
네덜란드 스히담의 소녀로 스케이트를 타다 다친 뒤 평생 심한 병고를 겪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병상에서 고통을 그리스도의 수난과 결합하여 봉헌하며 찾아오는 이들에게 위로를 주었습니다.
14세기 이탈리아의 평신도 도미니코회 회원으로, 교황을 로마로 돌아오게 하는 데 힘쓴 교회 학자입니다. 이탈리아와 유럽의 수호성인입니다.
독일 지그마링겐 출신의 변호사로 가난한 이들을 대가 없이 변호하다 카푸친회에 입회했습니다. 스위스 그라우뷘덴 지방에서 설교하며 화해와 일치를 위해 일하다 반대파의 습격을 받아 순교했습니다.
잉글랜드의 학자로 옥스퍼드 대학 총장을 지냈고 치체스터의 주교가 되었습니다. 왕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검소하게 살며 성직자 개혁과 가난한 이들의 구제에 힘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