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를 고르면 그날 축일인 성인과 그날 순교하신 한국 성인을 보여 드립니다.
오늘 10월 27일
한국 성인 축일·순교일 · 오늘 날짜는 보고 계신 기기의 시간대를 따릅니다.
이시도로는 마드리드 근교에서 평생 남의 땅을 일군 소박한 농부였습니다. 매일 미사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며 가난한 이들과 음식을 나누었고 농민들의 수호성인이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드 라발은 프랑스 출신으로 퀘벡의 첫 주교가 되었습니다. 신학교를 세우고 원주민 선교와 교회 기틀을 다지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이냐시오는 사르데냐 출신의 카푸친회 평수사로 40년 동안 탁발 소임을 맡았습니다. 겸손하고 온화한 모습으로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위로하여 많은 이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빈첸시오는 남프랑스 레랭 섬의 수도자이자 신학자였습니다. 그는 참된 신앙이란 언제 어디서나 모든 이가 믿어 온 것이라는 원칙을 제시하여 교리 전승의 기준을 밝혔습니다.
몰로카이의 성 다미안은 벨기에 출신 선교 사제로, 하와이 몰로카이 섬의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살며 돌보다가 자신도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레고리오 7세는 성직 매매와 세속 권력의 간섭에 맞서 교회 개혁을 강력히 추진한 교황입니다. 황제와의 대립으로 로마에서 쫓겨나 망명지 살레르노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네레오와 아킬레오는 로마 군인이었으나 그리스도를 믿게 된 뒤 군복을 벗었습니다. 이 때문에 박해를 받아 순교하였으며 그들의 무덤은 로마 도미틸라 카타콤바에 있습니다.
성 눈치오 술프리치오는 19세기 이탈리아의 젊은 노동자로, 고아로 자라 혹독한 노동과 병고를 겪으면서도 신앙과 인내를 잃지 않았습니다. 열아홉 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성 도미니코 사비오는 성 요한 보스코의 제자였던 이탈리아 소년으로, 열네 살의 짧은 생애 동안 기쁜 마음과 일상의 충실함으로 거룩함에 이르렀습니다.
성 레오폴도 만딕은 카푸친 작은형제회 사제로,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오랜 세월 고해소를 지키며 하느님의 자비를 전한 고해 사제입니다.
유다 이스카리옷 대신 사도로 뽑힌 분입니다. 사도행전 1장에 그 선출이 전해집니다.
바오로 6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이어받아 마무리하고 그 개혁을 이끈 교황입니다. 교황으로서 처음 여러 대륙을 순방하였으며 회칙 「인간 생명」을 발표하였습니다.
베다는 잉글랜드 재로 수도원에서 평생 기도하며 성경과 역사를 연구한 수도 사제입니다. 그가 쓴 『영국 교회사』는 귀중한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1899년 교회 학자로 선포되었습니다.
빅토르는 북아프리카 출신의 로마 군인으로 밀라노에서 복무하던 중 그리스도인임이 드러났습니다. 우상 숭배를 거부하여 혹독한 고문 끝에 순교하였습니다.
세르바시오는 퉁어런의 주교로 아리우스 이단에 맞서 정통 신앙을 수호하였습니다. 말년에 마스트리흐트로 옮겨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지금도 그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습니다.
4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이자 교회 학자로, 아리우스 이단에 맞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지켰습니다.
성 안드레아 보볼라는 17세기 폴란드의 예수회 사제로, 오늘날 리투아니아와 벨라루스 지역에서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다가 1657년 전쟁 중 잔혹하게 순교하였습니다.
열두 사도 가운데 한 분으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이끈 ‘주님의 형제 야고보’와 같은 인물로 기억되기도 합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이 무너져 가던 시기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 구약의 대예언자입니다. 박해와 조롱 속에서도 회개를 외쳤고 새 계약에 대한 희망을 선포하였습니다.
요한 1세는 동고트족 왕 테오도리쿠스의 강요로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사절로 다녀왔습니다. 돌아온 뒤 왕의 의심을 받아 라벤나에 갇혔고 옥중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요한 네포무체노는 프라하 대교구의 총대리로 교회의 권리를 지키다 왕의 분노를 샀습니다. 결국 블타바 강에 던져져 순교하였고 고해성사 비밀을 지킨 성인으로도 전해집니다.
요한 밥티스타 데 로시는 로마의 사제로 병원과 감옥, 거리의 가난한 이들을 찾아다녔습니다. 특히 고해성사를 통해 많은 이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전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첼레스티노 5세는 산속에서 은수 생활을 하다가 팔순이 넘어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다섯 달 만에 스스로 교황직을 내려놓고 다시 기도와 고독의 삶으로 돌아갔습니다.
크리스토포로 마갈라네스는 멕시코 정부의 교회 박해 시기에 신자들을 돌보던 본당 사제였습니다. 그와 동료 사제 및 평신도들은 신앙 때문에 처형되었으며 2000년에 함께 시성되었습니다.
파스칼은 스페인의 목동 출신으로 프란치스코회 평수사가 되어 문지기 소임을 맡았습니다. 성체 앞에서 오래 머물며 기도한 그는 성체 대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습니다.
파코미오는 이집트에서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기도하고 일하는 수도 생활을 처음으로 조직하였습니다. 그가 만든 수도 규칙은 동서방 수도원 전통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판크라시오는 어린 나이에 로마에서 세례를 받은 소년이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박해 때 신앙을 지키다 열네 살 무렵 순교하여 젊은이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플로리아노는 로마 군대의 장교로, 박해 때 그리스도인들을 돕다가 붙잡혔습니다. 신앙을 버리지 않아 강물에 던져져 순교하였으며 소방관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습니다.
열두 사도 가운데 한 분으로, 갈릴래아 벳사이다 출신입니다. 나타나엘을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16세기 로마의 사제로, 기쁨과 유머로 사람들을 이끌며 오라토리오회를 세웠습니다.
로사 베네리니는 이탈리아에서 가난한 소녀들을 위한 학교를 열어 여성 교육의 길을 열었습니다. 그녀가 세운 교육 공동체는 오늘날까지 학교 사목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15세기 이탈리아 카시아의 아내이자 어머니로, 남편을 잃은 뒤 아우구스티노회 수녀가 되었습니다. 불가능한 일의 수호성인으로 불립니다.
성녀 마리아 도미니카 마자렐로는 성 요한 보스코와 함께 살레시오 수녀회를 세운 공동 창립자로, 소녀들의 교육과 신앙에 일생을 바친 성녀입니다.
잔 다르크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들었다고 믿고 백년 전쟁 중 프랑스군을 이끈 시골 소녀였습니다. 적에게 붙잡혀 부당한 재판 끝에 화형을 당했으며 훗날 명예가 회복되고 시성되었습니다.
페트로닐라는 초기 로마 교회의 동정녀로, 도미틸라 카타콤바에 묻혀 공경받아 왔습니다. 그리스도께 자신을 봉헌한 삶을 지키다 순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베르나르디노는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로 이탈리아 전역을 다니며 열정적으로 설교하였습니다. 예수 성명에 대한 신심을 널리 퍼뜨리고 'IHS' 표지를 사용하여 사람들을 회개로 이끌었습니다.
힐라리오는 레랭 수도원에서 수도 생활을 하다가 젊은 나이에 아를의 주교가 되었습니다. 청빈하게 살며 설교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선에 힘썼습니다.
요한은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을 두루 다니며 설교하여 '안달루시아의 사도'로 불렸습니다. 사제 양성과 영적 지도에 큰 영향을 끼쳐 2012년 교회 학자로 선포되었습니다.
6세기 교황 대 그레고리오가 보낸 선교사로, 잉글랜드에 복음을 전한 첫 캔터베리 대주교입니다.
키토의 성녀 마리아나는 에콰도르 키토에서 가정 안에 은둔하며 기도와 보속으로 살았던 평신도 동정녀입니다. 재난 속에서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한 그녀는 키토의 백합이라 불립니다.
제르마노는 수도원장을 거쳐 파리의 주교가 되어 가난한 이들과 포로들을 보살폈습니다. 프랑크 왕들에게 회개와 평화를 권고하며 사목자로서 존경을 받았습니다.
파치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피렌체의 가르멜회 수녀로, 깊은 기도와 신비 체험, 오랜 병고 속의 인내로 알려진 성녀입니다.